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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십자가의 삶

 

우리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죽음을 넘어
구원과 부활에 영광에
도달해야만 합니다.
박헌일 필립보 신부 / 금왕 본당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그분의 사랑과 희생을 통한 구원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던 예수님 시대에는 십자가가 소름끼칠 정도의 공포를 주는 상징이었습니다. 로마는 작은 도시국가였지만 이웃 나라들을 전쟁으로 복속시켜 나감으로써 지중해와 유럽 그리고 이집트 유대지역까지 대제국으로 성장합니다. 로마의 성장은 전쟁의 역사였습니다. 장거리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군대는 물론이고 도로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군인들은 전쟁을 하면서 로마로 통하는 도로까지 건설하였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격언처럼 거미줄 같은 도로망이 건설되었습니다. 로마는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이 도로가에 전신주처럼 세워 더 이상 로마에 대항하는 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겁을 주었습니다.
  유다인들의 입장에서도 십자가형이 끔찍한 사형방법이지만, 더 무서운 이유는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자이다”(신명 21,23) 라는 성경말씀 때문일 수 도 있습니다. 에스델서도 악당 하만이 모르드개를 모함해 죽이려고 만들어 놓은 장대에 자신이 매달려 죽게 되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 하십니다. 이사야서에서 말하는 고통 받는 주님의 종이 바로 당신이며, 당신의 그 죽음의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고 하십니다. 베드로의 반박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 저주하시며 물러서라 하십니다.
  바오로 사도 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멀리했습니다. 죽음과 공포의 상징 그리고 주님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악마의 나무가 십자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대신 교회의 상징으로 물고기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십자가가 우리들의 정체성이며,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한다고 말합니다. 요한 복음의 시각도 바오로사도와 같이 십자가를 현양하며,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실패가 아니라, 구원의 상징이라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전례 때, 혹은 기도할 때에만 십자가를 생각합니다. 기쁨과 행복 그리고 성공의 예수님만을 바라보지는 않는지, 또 십자가은 오로지 주님의 몫이며, 나와는 무관하게 생각하지 않는지 성찰해 보았으면 합니다. 고통의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 또 그 고통의 예수님과 동반자가 되는 것을 대부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죽음을 넘어 구원과 부활에 영광에 도달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