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르침

교구장 담화2024년 교구장 사목교서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3-12-04 조회수 : 871

2024년 교구장 사목교서


신앙선조들의 열정과 사랑을 이어가는 교구공동체의 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히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먼저 지난 한 해 동안 저희 교구에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신 인자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변함없이 하느님께 삶을 의탁하며 신앙을 지키고 살아오신 모든 신자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환난과 박해 속에서도 신앙의 기쁨을 잃지 않고 늘 기도하며 청빈하게 살면서 형제애를 실천했던 우리 신앙선조들의 신앙을 기억하고 그분들의 삶을 배우고자 하였습니다. 올해에는 우리가 신앙선조들의 삶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그분들이 소중히 간직하고 지켜온 신앙의 유산을 살펴보고 그것을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씩 이루어가는 은총을 구하고자 합니다.

 

1. 신앙선조들의 복음에 대한 열정

  우리는 순교자들의 후손입니다. 우리는 여러 세대 긴 시간 동안 복음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간직하고 지켜온 신앙 증거자들의 후손입니다. 신앙선조들은 그리스도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참 생명을 다시 얻을 것’(마태 10,39; 마르 10,29-30 참조)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기뻐하면서 자신들의 삶으로 복음에 대한 충실성을 증거하였습니다. 신앙선조들은 복음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감옥에 갇혀 고초를 겪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형관들이 배교를 종용하며 겁박하는 순간에도 내 비록 만 번 죽사와도 천주를 배반치 못하겠나이다라고 답하며 순교로써 복음 말씀을 지켰습니다(병인치명사적 13권 참조).

  우리는 외연적으로는 풍요로운 재화와 경제력, 기술적으로 향상되고 발전된 세상을 살고 있음에도 인간의 존엄과 자유, 참다운 행복이 위협받는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세상은 강하면서도 동시에 약하고 최선을 이루거나 혹은 최악을 저지를 수 있으며 자유와 예속, 진보와 퇴보, 형제애와 증오의 길을 오가며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런 갈등과 대립, 부조화와 불균형은 근원적으로 사람의 마음속에 뿌리박힌 불균형에서 옵니다. 외형적인 발전과 번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인간의 고통과 불행의 원인이 무엇인지 신앙인인 우리는 복음의 진리에 비추어 스스로 그 답을 물어야 합니다. 물질의 번영과 재화를 좇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이기심이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를 지배하도록 받아들인 결과에 대해 곰곰이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현대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 4, 10; 복음의 기쁨 52-55항 참조).

  언젠가 사라질 이 세상(1코린 7,31 참조)에서 자신의 생명을 바쳐 신앙을 지키고 복음의 가르침을 지고의 가치로 삼고 지켰던 신앙선조들의 삶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복음에 대한 우리의 자세와 우리의 얼굴을 비추는 투명한 거울이고 탁월한 교재입니다. 신앙선조들은 어지러운 세상 안에서 참다운 진리를 찾고 갈망하는 가운데 복음을 발견하였고 복음의 가르침을 새로운 삶의 원리로 온전히 받아들였습니다. 신앙선조들은 복음의 진리를 찾아 중국을 향해 떨리는 발걸음을 옮겼으며 구원을 바라며 세례를 받은 이후에는 모진 환난과 박해 속에서도 그리스도께 자신들의 인생을 내맡기고 복음의 가르침을 따라 살았습니다. 우리 모두 신앙선조들이 간직하고 증거했던 복음에 대한 열정을 본받고 되찾음으로써 언제나 복음 안에서 참된 위로와 희망을 얻고 복음의 진리를 따라 사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2. 신앙선조들의 선교에 대한 열정

  우리는 선교 열정으로 가득했던 신앙선조들의 후손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인생의 참 기쁨과 목적을 깨달은 신앙선조들은 그리스도께서 선사하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박해를 피해 이주해야 했던 혹독한 시련 중에서도 신앙선조들은 그들이 마주하게 되는 이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한 신앙선조들은 관헌들에게 발각되고 체포되어 생을 마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들을 박해하던 군사와 관헌들에게마저 선교하려는 열망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황석두 루카 성인은 당진에서 서울로 압송되는 과정에서도, 주막에서든 길에서든 심지어 형장인 갈매못으로 끌려가는 순간에서도 언제나 그리스도교 교리를 사람들에게 설파하였습니다. 그의 교리는 말씀에 조리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감동적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차기진, 황석두 성인의 삶과 신앙;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 정리 번호 209번 참조).

  우리는 상대주의가 만연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종교의 영역에서도 신흥종교들과 사이비집단들마저 나름의 가치와 덕목이 올바르다고 주장하며 종교간의 우열을 가리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종교적 상대주의의 주장을 관철시켜 보려 합니다. 모든 것을 상대화시키고 저마다 자기 주장, 자기 신념을 합리화하고 선전하는 세상을 향해 우리는 우리가 전해 들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할 수 있는 담대한 용기와 지혜를 하느님께 청해야 합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본질적으로 사도직을 위한 소명”(평신도 교령, 2)이고, 모든 신자는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불리운 이들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 우리는 우리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준 이들 덕분에(로마 10,5 참조) 구원의 상속자가 된 이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 이웃에게 전하고 또 나누고 싶은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닌 복음의 기쁨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키워나갑시다. 우리의 이웃들에게 인간의 죄와 슬픔, 공허함과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참된 구원을 선포하고 새로운 희망을 전하는 사도들의 후예로 살기 위해 노력합시다.

 

3. 신앙선조들의 교회에 대한 사랑

  우리는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지켜낸 신앙선조들의 후손입니다. 신앙선조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시편 69,10; 요한 2,17 참조)라는 성경 말씀처럼, 박해와 시련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 교우촌(교회)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신앙선조들은 관헌들을 피해 깊은 산중에 숨어 살았고 어느 순간 다시 떠나야 하는 떠돌이의 삶을 살면서도 교회를 통해 그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불러주신 하느님을 찬미하며 머무는 곳마다 사랑이 넘치는 교우공동체를 만들고 성장시켜 나갔습니다. 신앙선조들은 대부분 궁핍하고 가난했지만 그들 가운데에서도 더 불쌍한 처지의 형제들을 찾아 도왔고 고아들을 교회공동체의 일원으로 거두어 주었으며(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16쪽 참조), 가난한 교우가 찾아오면 변변찮은 음식이라도 나누어 먹고 그가 교우촌에 정착할 수 있도록 환대해 주었습니다. 또한 고문과 문초를 당할지라도 동료 교우들을 밀고하지 않음으로써 교회와 교회의 사람들을 지켜내려 애썼으며 위험을 무릅쓰고 순교자들의 시체를 수습하고 살아남은 가족들을 도왔습니다(양업교회사연구소 편,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서한집, 18511015일자 서한, 84-117쪽 참조).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어떻게 구원을 희망하며 살아가게 되었습니까? 모든 것이 교회 덕분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세례가 교회로부터 온 것이고,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로부터 선포되는 하느님의 말씀과 풍요로운 성사의 은총 덕분에 우리는 함께 영원한 아버지의 집을 향해 이 세상 나그넷길을 순례하고 있습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030항 참조). 사도 바오로는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1코린 4,7)라며 신자들에게 교회의 중요성과 교회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점점 더 커져가는 개인주의와 이기적인 욕망 추구의 성향으로 함께 사는 공동체 의식이 와해되고 깨져가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교회공동체와 상관없이 그리스도를 개별적으로 믿으면 된다는 자기 위주의 편의주의적인 사고방식, 이른바 신앙의 사유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신분, , 토지, 생명...)을 버리고 교회공동체를 이루고 지키며 사랑한 신앙선조들의 아름다운 모범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교회를 통해 우리를 구원의 공동체로 불러주시고 예수님의 새 가족(마태 12,49 참조)이 되게 하신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따뜻하고 화목한 교회공동체, 더 많은 이들을 포용하고 더 작은 이들을 찾아 돌보는 교회공동체를 이루도록 다 함께 노력합시다.

 

4.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

  끝으로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최양업 신부님의 숭고한 삶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혹독한 박해로 수많은 교우들을 잃고 쓰러져가던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흩어진 신자들을 찾아 나섰고 길 위의 사도로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그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워주었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의 하느님 사랑과 그분의 선교 열정, 신자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기억하고 본받고자 한국천주교회는 오랫동안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해 필요한 절차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간절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최양업 신부님의 전구를 통해 성덕의 표징인 기적이 이루어지기를 모두 함께 기도하여 주십시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신앙선조들의 정신과 마음을 사로잡았던 복음에 대한 열정과 선교에 대한 열의, 그리고 교회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어지고 커져가는 한 해가 되도록 우리 모두 마음을 다잡고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합시다.

 

2023123

대림 제1주일

 

청주교구장 김종강 시몬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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