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르침

교구장 담화2024년 교구장 부활 담화문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4-03-25 조회수 : 320

2024년 부활 담화문

마음 속에서 날이 밝아오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2베드 1,19)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주님 부활 대축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드리며 예수님께서 주시는 부활의 기쁨과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1. 부활, 악에 맞선 선의 승리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악을 봅니다. 폭력과 억압은 세상의 다양한 영역에서 일상적인 것이 되었고, 많은 불평등이 인간이 활동하고 존재하는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악의 힘에 눌려 그의 노예처럼 살아가는 사람의 처지를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사람은 자기 길의 주인이 아닙니다. 인간은 그 길을 걸으면서도 자신의 발걸음을 가눌 수 없습니다”(예레 10,23). “악마와 그 부하들”(마태 25,41)이 활개치는 세상에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사나운 늑대가 되고 섬뜩한 맹수가 됩니다(호모 호미니 루푸스, Homo homini lupus).

이렇듯 암울한 세상의 현실 앞에서, 오늘 우리는 복음서가 전해주는 빈 무덤의 소식을 듣습니다. 거기에는 여인들과 제자들이 목격한 빈 무덤이 있습니다(루카 24,3 참조). 빈 무덤은 분명한 사실이고 완전히 새로운 현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악에 맞서 아버지의 선을 행하신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부활시키심으로써 예수님을 세상의 모든 악에 대한 승리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빈 무덤을 보고 그 안에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해 들은 여인들은 처음에는 너무도 깜짝 놀랐지만(마르 16,5 참조), 불가능한 것을 받아들이고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으며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정말 부활하셨기에 우리는 오늘도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희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하느님 아버지를 믿으며 어두운 세상에서 선한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폭력과 갈취, 증오와 복수 같은 악의 모든 행위는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고 그 길의 끝에서 사람은 결국 무참히 실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참 생명의 힘을 믿고 선으로 악에 맞서 싸웁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모든 이는, 사람이 사람에게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는(호모 호미니 아미쿠스, 프라테르, Homo homini amicus, frater) 세상을 꿈꾸고 열망하며 이뤄갑니다.

 

2. 부활, 두려움에 맞선 사랑의 승리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그분께서 무덤에 묻히셨을 때 그분께 희망을 두고 그분을 따랐던 제자들의 절망과 상실감을 전해줍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지만(루카 24,21 참조) 그분의 죽음으로 그들은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었고 무엇보다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사람들이 두려워 방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다고 했습니다(요한 20,19 참조).

우리도 두려워합니다. 창세기 저자는 아담이 처음으로 입을 열어 고백한 감정이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이었다고 말합니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두려워 숨었습니다”(창세 3,10). 인간의 죄는 그의 창조주인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만들었고, 하느님께 죄를 지은 이후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갖고 살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사람이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노예처럼 예속된 삶을 살아가며 스스로 악과 죄에 빠져 산다고 말합니다(히브 2,15 참조).

이 모든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도 아직 어두울 때에”(요한 20,1),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향료와 향유를 준비하여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에 나오는 이 여인들은 마음속에 큰 슬픔과 두려움을 안고 있음에도 예수님을 찾고 그분을 뵙고자 하는 깊은 열망을 지닌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잃은 아픔을 마음에 담고 있었지만, 그분이 살아계실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쏟으셨던 사랑을 기억하며 끝까지 스승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멈추지 않은 이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신실한 사랑, 예수님과 맺은 깊은 우정이 없었다면 여인들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무덤에까지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던 이들만이 그분의 무덤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이겨내는 힘입니다. 주님께 대한 애틋한 사랑을 간직한 사람은 마음 속에서 날이 밝아오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2베드 1,19) 생명의 주님께 나아가는 자신의 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3. 부활, 주님을 따를 용기와 믿음의 승리

맨 먼저 빈 무덤을 본 여인들은 제자들에게 달려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그분께서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갈 것이니 거기서 그분을 뵙게 될 것이라는 놀라운 소식을 전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뵙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계신 갈릴래아”(마르 16,7)를 향해 다시 걸어가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다시 뵙기 위해 제자들은 다시 한번 일어서서 주님이 계신 곳을 향해 걸어갈 용기와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가 찾아나설 갈릴래아는 어디입니까? 갈릴래아는 예수님의 복음이 선포되는 이 세상의 모든 곳이고, 믿는 이들의 공동체가 부활의 빛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모든 곳이며, 재화와 물질을 나누고 성찬의 식탁에서 빵을 쪼개는 자리에 모여 서로 형제적 사랑과 화해를 이루는 모든 곳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복음서의 제자들처럼 우리에게도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우리의 인생길을 다시 걸어갈 용기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앞에는 여전히 세상의 많은 유혹과 갖가지 시련이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보다 먼저 걸어가시며 우리가 걸어갈 길을 열어주십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께서 먼저 가시고 열어주신 그 길을 따라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하느님 아버지의 오른쪽에 이르기까지(콜로 3,1 참조), 한 걸음 한 걸음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아버지의 집을 향해 올라갑시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생명이 죽음을 이겼습니다. 사랑이 두려움을 이겼습니다. 마냥 승리할 것 같았던 죽음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으로 완전히 패배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사랑 안에 살고 사랑으로 이뤄낸 인생은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현재가 이미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가 이미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우리 자신의 파스카를 살아냅시다. 예수님께서 먼저 가신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리 인생길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은총을 구합시다.

2024331

주님 부활 대축일

 

 

청주교구장 김종강 시몬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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