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장 담화2025년 교구장 사목교서
2025년 교구장 사목교서
최양업 신부님의 영성과 삶을 내면화하는 교구 공동체의 해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난 한 해 하느님께서 우리 교구를 돌보아 주신 사랑을 기억하며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많은 어려움 중에도 복음 말씀에 따라 신앙을 지키며 사신 신자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 이 거룩한 세 이름은 최양업 신부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며 되뇌던 말씀입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예수님처럼 길 잃은 양들을 찾아 나선 길 위의 목자로 사셨고, 마리아처럼 올곧은 순명의 삶으로 주님을 따랐으며, 요셉처럼 묵묵하고 성실하게 신자들을 사랑하며 돌보다가 그토록 바라시던 하느님 아버지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우리 교구는 지난 두 해 동안 선조들의 신앙을 배우며 우리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바라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2025년은 선조들의 신앙에서 배우는 세 번째 은총의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신앙의 빛나는 모범이신 최양업 신부님을 기리며 그분의 영성과 삶을 우리의 삶 속에 내면화하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1. 소년 최양업 -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루카 1,38).
1836년 2월 6일 박해와 혼란의 시대에 열다섯 살의 소년 최양업은 주님의 부르심에 순명하며 기꺼이 응답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이 소년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천 년 전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성모님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소녀 마리아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길을 떠나 서둘러”(루카 1,39) 유다 산악 지방을 향해 험난한 길을 떠났던 것처럼, 소년 양업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는 “곧바로”(마르 1,18) 중국 상해까지의 머나먼 길을 걸어갔습니다. 부르심의 길, 배움의 길의 여정은 배고픔과 죽음의 위협을 마다하지 않는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와 의탁의 여정이었습니다.
소년 양업은 어릴 적부터 부모를 따라 피신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와 요셉이 이집트로 피난 가시던 이야기와 갈바리아 산에 십자가를 지고 오르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부모에게서 이어받은 묵주기도를 통해 성모님께 자신을 의탁하는 봉헌과 기도의 삶을 익히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환난 가운데서도 하느님을 신뢰하며 부르심의 길을 떠난 소년 양업의 마음은 ‘나의 영혼이 하느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뛴다’(루카 1,46-47 참조)고 고백하셨던 성모님의 마음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많은 것이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주님께 대한 신뢰를 지니고 주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한 소년 양업의 모습 안에서 우리는 신앙이 주는 참 기쁨과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올 한 해 우리를 구원의 길로 불러주신 하느님의 뜻을, 소년 양업처럼 그리고 성모님처럼 ‘곰곰이 생각하며’(루카 1,29; 2,19 참조)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2. 청년 최양업 - “깨어나라, 나의 영혼아!”(시편 57,9; 108,2).
청년 최양업은 부르심의 길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이 처한 어느 곳이든 배움에 있어서 언제나 최선을 다하며 착한 목자의 길을 준비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청년 양업의 시간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조선 교회의 신자들에게 들이닥친 극심한 박해와 부친의 순교, 어머니의 고초와 죽음, 그리고 동생들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픈 현실을 전해 들어야 했고, 함께 유학을 온 동료 최방제 신학생이 곧바로 세상을 떠나는 이별의 아픔을 겪었으며 마카오와 광동에서 발생한 내전으로 마카오와 필리핀 롤롬보이를 오가는 피난 생활을 하며 살았지만, 청년 양업은 고국에서 극심한 핍박을 겪는 신자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현재의 위기에 용감히 맞서고자 했던 올곧은 믿음의 청년이었습니다.
청년 양업의 시간이 하느님과 교우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희망으로 채워져 있었기에, 훗날 순교자들의 행적을 라틴어와 불어로 옮기는 일에 “그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없었고”, 고단한 성무 수행 중에도 이뤄진 수많은 한글 교리서와 성가책의 편찬과 보급도 청년 양업의 올바른 배움의 시간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입니다. 또한 청년 양업은 늘 순교를 열망하던 신앙인이었습니다. 조선의 순교자들, 곧 “그리스도 용사들의 수난과 ‘장렬한 전쟁’에 동참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서 우리도 크나큰 고난을 참아 받은 다음에야 열매를 맺도록 정해 두셨다”는 굳센 희망을 간직하며 살았습니다.
믿음을 상실해 가고 믿음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를(루카 18,8 참조) 사는 우리에게 청년 양업은 환난 중에도 그칠 줄 모르는 신앙의 선물인 견고한 희망과 꺾이지 않는 용기, 절망 가운데서도 멈추지 않는 항구한 기도,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신앙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3. 길 위의 사도 -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마태 10,8).
길 위의 사도 사제 최양업은 쓰러진 백성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또 폐허가 된 교회의 재건을 위해 길 위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착한 목자였습니다. 1849년 말, 애타게 그리던 조국에 돌아온 뒤 사제 양업은 해마다 칠천 리 내외를 걸으며 11년 6개월 동안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교우촌을 찾아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었습니다. 그의 발길 앞에는 고통과 고뇌의 강물이 끊임없이 흘렀지만, 길 위의 사도는 하느님께서 마지막 걸음을 멈추게 하실 때까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걷고 또 걸었습니다.
사제 양업에게 하느님은 언제나 ‘위로요 희망이요 원의’였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권능 안에서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7). 갖가지 고통에 신음하는 나라의 백성들과 교우들의 비참한 생활을 마주하면서 또한 자신에게 엄습해 오는 박해와 구금의 위협에 맞서면서 사제 양업은 늘 신자들을 찾아갔고 그들을 위로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얼굴이 항상 그을리고 갓끈 자리는 완연히 표가 났던” 사제 양업은 고통받는 신자들을 위해 ‘땀의 순교자’로 목숨을 바치기까지 그가 받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을 한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랑이 시들해져 가는 세상, 저마다 자기 안위만을 염려하며 이웃에게 무관심해져가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제 양업은 참 사랑에 헌신하는 인생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것인지, 복음적인 사랑의 열매가 얼마나 풍요롭고 위대한 것인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올 한 해 사제 양업의 헌신적인 사랑과 박해를 이겨낸 교우들의 교회에 대한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의 모습과 교회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간절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최양업 신부님의 전구를 통해 성덕의 표징인 기적이 일어나 그분의 시복과 시성이 이루어지기를 모두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최양업 신부님과 함께 우리 모두 현세에서는 세속의 유혹에 맞서는 ‘전우’가 되고 후세에서는 ‘공동 상속자’가 되는 영광을 얻도록 합시다. 아멘.
2024년 12월 1일
대림 제1주일
주교구장 김 종 강 시몬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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