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르침

주교회의 담화2026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6-05-22 조회수 : 12

2026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

한반도에서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2026년은 한반도가 분단된 지 81년, 한국 전쟁이 일어난 지 76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반도 공동의 집에 살고 있는 남과 북 모두에게 그리스도의 평화가 가득하기를 빕니다. 


지난해 8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에서는 분단 80년을 맞아 특별 사목 서한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서한에서 남북은 그동안 불신과 미움의 마음을 키우며 무기와 군사력을 방패 삼아 상대를 굴복시키려 해 왔음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힘으로 얻는 평화는 참 평화가 아니고 언젠가 깨질 수밖에 없는 평화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 뒤, 한반도에서 긴장을 낮추고 대화를 나누려는 다양한 노력이 있었으나 남북 관계는 아직도 경색되어 있습니다. 


국제 관계에서도 계속된 대화 단절과 불신으로 촉발된 중동 지역의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는 전쟁은 서로를 향한 적대감만을 키울 뿐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사실 갈등은 만남과 대화, 그리고 신뢰 회복으로만 풀어낼 수 있습니다. 이에 중동 지역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도 우리의 더 많은 관심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국제 현실과 더불어 안타깝지만 한반도에서도 서로를 향한 불신과 적대감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굳어지고 있습니다. 길은 끊어지고, 대화는 막히며, 만남은 기약할 수 없는 상태로 치닫고 있습니다. 더욱이 최근 북한은 남북의 민족 공동체성보다 서로 다른 두 국가성을 강조하며 남북이 서로 더 멀어지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하였습니다. 남북은 분명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지만, 국가성을 강조하는 이러한 방향이 대화를 가로막고 적대성을 더욱더 키우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남북의 당국자들이 공존, 공영의 관계로 나아가는 길을 지혜롭게 찾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남북이 각자의 마음에서 적대감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남북은 떨어질 수 없고 하나의 한반도라는 공동의 집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사이입니다. 서로 의심하고 증오하는 마음은 발전과 완성에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며, 상대의 처지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그동안 가졌던 굳은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녹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어렵거나 복잡한 문제가 아니라 가장 기본적이고 인도주의적인 문제부터 마주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북이 전쟁의 상처를 보듬는 일부터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많은 이가 그 존재조차 잘 모르지만,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에는 북한 군인들의 묘지가 있습니다. 그곳은 6·25 전쟁 중에 전사한 군인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국군과 함께 수습된 북한군의 유해를 묻어 조성한 곳입니다. 1996년 우리 정부가 제네바 협정을 준수하고 인도주의 정신을 지키고자 국군 유해를 발굴하다가 함께 수습한 북한 군인들의 유해를 안장하며 마련하였다고 합니다. 남과 북이 서로 대화하고 좋은 관계를 이어왔다면 이들의 유해는 벌써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돌아가야 할 이들을 돌려보내는 것이 적대감을 낮추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도 만나야 하지만, 이 세상을 떠난 이들도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남북 당국자가 북한군의 유해 송환을 이념과 정치의 문제로 바라보지 말고, 전쟁의 고통을 보듬고 그 상처를 낫게 하려는 마음으로 바라보며 긍정적인 자세로 나설 수 있기를 빕니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관계 맺기의 시작이고, 미움의 마음을 협력의 마음으로 바꾸는 길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한반도의 갈등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미움을 화해의 길로 돌리는 데는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지혜와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 길이 쉽지 않다고 해서 물러서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부활의 증인이고, 그리스도께서 맡겨 주신 사명 곧 평화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올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에는 어렵고 힘든 문제보다 단순하지만 바로 시행할 수 있는 구체적 조치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불신과 적대감이 더욱 낮추어지기를 기도합시다. 우리의 이러한 기도와 노력은 남북 사이에 ‘무기를 내려놓고,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를 이루어 줄 것입니다.


 


2026년 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김 선 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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