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르침

교구장 담화2015년 교구장 성탄 담화문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5-12-28 조회수 : 742

2015년 성탄 담화문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1. 오늘 구세주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참빛으로 오신 구세주 강생의 기쁨과 평화가 신자 여러분의 가정, 그리고 온누리에 충만하길 기원합니다.

 

2. 예수님의 탄생을 전하는 루카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곳이 베들레헴의 어느 마구간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루카 2,7 참조). 화려하게 빛나는 왕궁도, 멋진 장식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큰 방도 아닌,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마구간이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습니다. 세상의 구세주, 만왕의 왕,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의 탄생이 이토록 초라했습니다. 멋지고 화려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셔야 할 분이 마구간에서 탄생하셨고,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과 환호를 당연히 받아야 할 분이 단지 가난한 목자들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예수님의 탄생은 한없이 초라하게만 보입니다.

 

3. 그러나 세상의 잣대로는 예수님 탄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없음을 요한복음서는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요한 1,10). 돈과 권력과 명예를 쫓아가는 세상의 시선으로는 참빛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가난한 자들과 힘없는 자들이 무시당하고 고통 받는 세상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가장 작은 이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지 않는 세상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하여 친히 가난하게 되셨고, 우리 모두를 부유하게 하시려고 가난하게 되셨기(2코린 8,9 참조) 때문입니다.


4. 세상이 비록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하더라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단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요한 3,17).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루카 5,32).

  자신의 잘못을 겸손되이 뉘우치는 회개는 하느님 아버지의 한없는 자비와 맞닿아 있습니다. 루카 복음 15장에 나오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는 회개하는 당신의 자녀를 하느님께서 얼마나 큰 사랑과 자비로 받아주시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방탕한 생활 끝에 거지가 되어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아버지의 자비로운 품안에서 아들의 모든 잘못은 용서되었고, 자비를 체험한 아들은 새날, 새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기뻐하는 오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회개하는 작은 아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기를 희망합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자비의 희년'을 지내는 우리가 회개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고, 그 자비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자비의 얼굴』 15항, 25항 참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5.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습니다"(요한 1,9). 예수 그리스도는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비추는 생명의 빛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영원한 생명이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1요한 5,11.20 참조).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이 빛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절망과 좌절의 어둠 속에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캄캄한 어둠을 밝히는 희망과 승리의 빛이신 구세주 그리스도의 빛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이라는 구원의 기쁜 소식은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통하여 차별 없이 모든 이에게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물질문명과 결합되어 '우리'가 아닌 '나'만의 안위를 추구하여 사회적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세월호 피해자들의 진실 규명에 대한 절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본 생존권에 대한 요구,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좌절한 젊은이들의 외침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되고 무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기뻐하는 오늘, 이러한 사회 풍조에 맞서 우리 모두는 세상의 빛이 되어 사랑의 등불을 밝혀야 하겠습니다. 특히 가장 작은 이들인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아무도 그들의 말을 깊이 있게 들어주지 않는 이들, 멸시당하고 무시당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삶으로써 선포해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 이 선포의 자리에 함께 해 주실 것을 믿으며, 신자 여러분의 가정과 교구 공동체, 그리고 지역사회에 성탄의 기쁨과 평화가 가득히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2015년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에

 

청주교구장  장 봉 훈 가브리엘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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